최근 들어 경영난을 호소하는 대형병원들이 늘고 있다.
환자 수 감소와 비급여 영역의 축소 등 각종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으로 진료수익이 줄고 있는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대형병원들의 경영난은 저수가 등 의료제도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을 외면한 채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 부대사업, 전공의를 통한 값싼 의료인력 확보, 그리고 지나친 병상수 확충 경쟁 등에 몰두하면서 스스로 위기를 자초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 때문에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이 지속될 경우 머지않아 대형병원 불패 신화가 깨질 것이라는 우려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현재 경영난으로 몸살을 앓기는 '빅5' 병원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 병원의 경영과 진료실적 규모 등을 살펴보면 지금까지 지속돼 온 외형적 성장이 정체기에 접어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국세청 공익법인 공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서울대병원은 287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가톨릭의료원은 257억원, 연세의료원은 66억원, 삼성서울병원은 11억원 등의 적자 경영을 면치 못했다.
빅5 병원 중 서울아산병원만 유일하게 상가임대와 장례식장 등 부대사업 수입에 힘입어 70억원이 넘는 흑자를 기록했다.
병원계는 대형병원의 경영난에 심각한 위기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처럼 경영난이 심화된 배경에는 영상수가 인하와 정부의 보장성확대 정책에 따른 여파 때문이라는 것이 병원계의 분석이다.
대한병원협회 나춘균 보험위원장 겸 대변인은 “지난해 영상수가가 20% 인하되면서 병원경영에 악영향을 미쳤다”며 “지금 상황에서도 힘든데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대학병원들은 3년 안에 문을 닫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병상 확충을 통한 몸집 부풀리기를 시도하는 것도 지금과 같은 저수가 체계 아래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항변한다.
대한병원협회 정영호 정책위원장은 '현재 저수가 체제에서 물량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의료시장의 룰'이라며 '특히 대학병원 입장에서는 외래진료 없이는 운영이 안 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외래진료 규모를 확대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병원 스스로 자초한 위기'
의료계 일각에서는 대학병원의 경영난은 이미 예견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규모의 경제에 집착한 나머지 병상 확충 등 덩치키우기만 급급해 저수가 등 의료제도가 가진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상급종합병원으로써 교육, 연구, 의료기술의 개발 등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도 경영이 가능하도록 하는 의료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제목소리를 내고 제도개선을 추진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동네의원과 감기 등 경증질환자 유치 경쟁까지 벌이면서 의료전달체계의 '블랙홀'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극단적으로 대형병원 한두 곳이 망해야 정부에서도 현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제도개선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란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의원협회 윤용선 회장은 “대형병원들도 저수가 개선 등 근본적 문제에 접근을 했어야 한다”며 “그러나 저수가와 같은 근본적인 의료제도 문제 개선을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수익을 늘리기 위해 행위량만 증가시켜 오다가 드디어 한계에 봉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 시점에서 대학병원들이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한 적극적 노력에 나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지금까지 병상 확충과 영역 확장 등을 통해 경영을 이끌어왔기 때문에 이런 경영기조를 멈출 경우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윤 회장은 '대학병원들이 의료전달체계 왜곡에 따른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의료전달체계를 확립코자 하면 대학병원은 외래수익을 포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의료전달체계 개선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일 것 같지 않다. 지금 대형병원들의 처지는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호지세(騎虎之勢)와 같다. 내리면 죽게 될 처지'라고 꼬집었다.
대형병원들이 적극적으로 의료제도 개선에 나서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대한의사협회 송형곤 대변인은 '대학병원들이 의료제도 및 의료전달체계 개선에 나서려면 기득권을 놓아야 가능할 것'이라며 '대학병원 경영진은 의료란 이익창출이 아니라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라는 거시적 안목으로 의료제도 개선에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병원들이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고려대 보건대학원 윤석준 교수는 '국내 의료시스템에서 대학병원들은 나름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며 '대학병원들이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충분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